야히코 신사【彌彦神社】
2022.02.17 note야히코 신사【彌彦神社】
야히코 신사에 모셔져 있는 고사이진(御祭神)은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 신의 증손자에 해당하는 아메노카고야마노미코토(天香山命) 신입니다. 그 대신(大神)님은 진무천황(神武天皇)이 즉위하신 지 4년 후에 칙명을 받아, 에치고(越後) 지역의 개척을 위해 기슈 구마노(紀州熊野:현 와카야마현)에서 아메노토리후네(天鳥船:신이 타는 배)를 타고 요네미즈가우라(米水浦:구 데라도마리마치 노즈미하마, 현 나가오카시 노즈미) 해안에 오르셨습니다. 거기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소금을 만드는 기술과 그물을 이용한 고기잡이, 또한 술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신 후, 사루가반바야마(猿ヶ馬場山) 와 아마고이야마(雨乞山)의 산을 넘어 지금 야히코산 기슭에 있는 사쿠라이(桜井) 마을에 머무르면서 샘물터를 찾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몸을 정하게 하신 다음에 북쪽(지금 신사가 있는 쪽)으로 향해 “真霧深、朝闇気国 (안개가 짙게 깔려 있어 아침인데도 좀 어두운 곳이다) ” 라고 하신 것으로 사쿠라이고(桜井郷)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여기 야히코에 궁거(宮居)를 정하신 후 고시노쿠니(越の国:현 니가타현 부근 일대) 나라를 평정하시고 주민에게 벼농사와 술을 만드는 기술을 지도하셨습니다. 6대에 걸친 후손들도 고사이진(御祭神)의 뜻을 이어가면서 에치고 지역에서 산업 문화의 기초를 다지셨고 니가타현의 개척과 문화 산업의 시조신(始祖神)으로 숭상되어 있습니다. 고사이진(御祭神)은 구마노 신구시(熊野 新宮市)에 계셨을 때는 다카쿠라지노미코토(高倉下命) 신으로 불렸고, 어업을 가르치셨다는 것으로 다구리히코노미코토(手繰彦命) 신이라고도 불립니다. 또한 이야히코는 ‘伊夜比古・伊夜日子’ 라고도 기재되어 있습니다.
영봉 야히코산 기슭의 수령 400~500년이 되는 삼나무와 느티나무의 고목으로 둘러싸인 깊은 숲에서 자리 잡고 있는 야히코 신사는 신성한 매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도리이는 메이지 45년(1912년)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어 다이쇼 5년(1916년)에 재건되었습니다. 전면 참배길 입구에 위치하여 오른쪽 앞에 신사의 이름 ‘묘진타이샤 에치고이치노미야(名神大社越後一の宮)’ 가 표시된 비석이 있습니다. 양부식 도리이(両部式鳥居)이며, 높이 8m50cm, 기둥 사이 6m입니다. 위쪽 중앙의 ‘야히코 신사(彌彦神社)’ 현판(다다미 1장 크기)은 간인노미야 코토히토 친왕(閑院宮載仁親王)께서 쓰신 것입니다.
가운데 기둥은 4개의 작은 기둥으로 받쳐 있어 땅에서 6cm 정도 떠 있는 구조입니다만 그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해 드립니다. 이 구조에 대해서는 내진 구조적 역할과 쓰가루(津軽:현 아오모리현) 영주의 전설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치노토리이를 등지고 앞에는 몬젠마지(門前町:신사를 중심으로 발달한 마을)이 펼쳐져 있고, 왼쪽에는 야히코 신사 신관(神官)들의 주택이 있었던 동내인 샤카마치(社家町)가 있습니다. 오른쪽 주차장 일대는 메이지 45년(1912년)에 대화재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혼코지(本高寺) 철의 대문이 있었던 곳이라 다이몬마치(大門町)라고 불립니다. ※큰 기둥의 재질은 노송나무, 가로대는 삼나무입니다.
시내에 놓여 있는 이 다리는 신만이 건너가는 다리로 무로마치 시대(1336-1573년)의 경내 안내도에도 기재되어 있어 메이지 29년(1896년)에 개축되었습니다. 이 신교(神橋)는 북처럼 반원 모양으로 불룩하게 많이 휘어져 있어 오타이코바시(太鼓橋)라고도 불립니다. 메이지 45년(1912년)에 발생한 대화재에서도 유일하게 불타지 않았기 때문에 화재를 막아 주는 덕이 있다고도 합니다.
게이쵸 연간(1596-1615년) 때 히로사키(弘前:현 아오모리현 히로사키시)의 쓰가루 노부히라(津軽 信枚〈牧〉) 성주가 에도(江戸:당시의 수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도(佐渡) 앞바다를 지나가다가 갑작스러운 폭풍우 때문에 난파하게 생겼을 때, 배 안에서 야히코산을 향해 나중에 도리이를 봉납하는 것으로 신에게 도움을 구했더니 순식간에 바다가 잠잠해져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매년 사례 참배를 해 왔으나, 어느 날 두 개의 불덩어리가 성안을 날아다니는 괴현상을 보고 그때 도움을 주신 이야히코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아직 안 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아, 겐나 3년(1617년)에 고자부네(御座船:귀인이 타는 배)의 돛대와 함께 불덩어리가 된 돌을 봉납하였다고 합니다.
이 돌은 ‘쓰가루노 히노타마이시(쓰가루의 불덩어리 돌)’ , 또는 ‘오모카루노이시(무겁고 가벼운 돌)’ 라고 불립니다. 예로부터 소원이 있을 때 이 돌을 들어 올려 가볍게 느끼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무겁게 느끼면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여 파워 스포트로도 인기가 있습니다. 덧붙여 이치노토리이(첫 번째 신사 입구 문)의 가운데 기둥이 조금 떠 있는 이유는 봉납 된 돛대의 길이가 모자랐기 때문이라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